사선대(四仙臺) 에 얽힌 이야기
예날 동춘당(同春堂) 송준길(宋浚吉) 선생이 이곳에 은거 하여 머물면서 이곳을
송기(宋基) 또는 송대(宋臺) 라고 불렀다고도 한다.
훗날 1909년 고종의 5남 의친왕 강(堈)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전 승지 정태균(鄭泰均)
을 찾아와 머물면서 북상 위천지방의 우국청년들과 만나 사선대 일대를 뒷날 의병의
근거지로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만들려고 준비하던중 일제에 발각 되어 그 뜻을
이루지 못한 한이 스린곳 이라고도 한다.
또 이 곳은 왕실의 선원(璿源)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사선대(四仙臺)라고 부른 것을
대암(臺岩) 포갬이 4층이고 돌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로 사선대라고
무주구천동
제15경 월하탄 (수경대에서 약 3.0km지점) 월하탄은 선녀들이 달빛아래 춤을추며 내려오듯, 두 줄기 폭포수가 기암을 타고 쏟아져 내려 푸른 담소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이다.